-Port of Vessels

Ha Manseok


그대로 폐허가 된다 해도 자연스러워 보였던 동력 없는 바지선. 그리고 과연 저 작은 것 이 10배나 큰 바지선을 끌고 간다는데 가능할까하는 염려를 탄식으로 바꾼 예인선. 그 둘을 잇는 밧줄. 그 관계는 절박함으로 살아내는 우리를 닮았다. 적당히 떨어 지고 적당 히 가까워진 채로 파도에 휩쓸리고 암초 에 쓸리며 각자의 몸에 난 생채기의 역사를 같 이 한다. 서로의 상처를 안타까이 여기지만 끝내 그 살갗에 닿지 못 하는 우리. 그러나 어느 순간에라 도 투명한 렌즈로 상처에 줌인하고 이미 저버린 흉터에 시선을 담아 셔 터를 누르면 우리의 관계도 밧 줄로 묶여 결코 남이 될 수 없게 한다. 뷰파인더로 바라 본 그 생채기들은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매끈하 게 빠진 그 어떤 새 것보다 더 강인해 보 인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역사를 이미 증명해낸 업적 같은 것이다. 그 업적의 흔적들을 이미지로 담았다.


Tethered Narratives: HA MANSEOK's Port of Vessels_2022 and the Poetics of Contingent Identity_김희경 비평


하만석의 Port of Vessels_2022는 인천 남항, 오래된 선박이 수리되는 장소에서 출발한 시각적 성찰이자, 존재의 경계에 대한 조용한 탐문이다. 작가는 낡은 바지선, 그것을 끌어당기는 예인선, 그리고 그 사이를 물리적으로 잇는 밧줄이라는 세 가지 상징을 통해, 균형과 긴장, 의존과 거리감으로 구성된 인간 관계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하만석은 지속적으로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사유해온 작가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밧줄이라는 물질적 구조물에 자신의 철학적 시선을 투사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존재 거대하고 침묵하는 바지선, 작지만 끈질긴 예인선-을 연결하는 동시에, 그들 사이에 도사리는 불안정한 의존성과 감정의 거리를 가시화하는 장치다. 이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그 는 인간 존재가 지속적으로 연루되고 소외되는 방식을 바라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표면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응시다. 하만석은 긁히고 녹슨 선체의 결에 렌즈를 밀착시키며, 그 표면을 단순한 물질의 마모가 아닌, 시간의 켜가 중첩된 정체성의 표지로 전환시킨다. 광택 있는 새로움보다 거칠고 부식된 질감에서 오히려 더 강인한 생의 내력을 발견하는 그의 시선은, 주디스 버틀러가 언급한 정체성의 수행성과 관계적 성격을 연상시킨다.


그의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선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과 궤적에 접근하려는 감각적 언어이며, 침묵과 진동으로 구성된 관계의 리듬을 시각화하는 실천이다. 바지선과 예인선을 연결하는 밧줄처럼, 그의 사진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닿을 듯 말 듯한 긴장을 사유하게 한다. 하만석은 우리가 타인의 상처에 결코 완전히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미세한 간극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중심이 아니라 경계에서 작업한다. 응시와 거리두기, 감각적 개입과 물리적 비접촉 사이에서, Port of Vessels_2022는 관계의 서사를 실어 나르는 일종의 시각적 항해가 된다. 이 작업은 고정된 자아가 아닌, 끊임없이 흔들리고 생성되는 정체성의 흐름을 따라가며, 세계 속에서 위치 지어지는 존재의 조건들을 조용히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