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ath the Italian Facade

응시와 해체의 윤곽: 하만석의 《beneath the ITALIAN facade》에서 자아의 해방을 향한 감각적 장면


하만석의 《beneath the ITALIAN facade》는 사진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통해,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낯선 장소 속에서 새롭게 사유하는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이탈리아라는 역 사성과 미학이 중첩된 공간을 배경으로, 타자와 마주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정체성의 진동을 감각적으로 채집한다.

이탈리아는 시선이 축적된 장소다. 르네상스 회화와 고전 건축, 기억의 표면이 겹겹이 쌓인 도시의 골목들은 수세기 동안 '응시의 대상'이자 '재현의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하만석 은 바로 그 장소 안에서, 방랑자의 시선으로 현지인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러나 그는 타자를 향한 응시를 통해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얼굴 앞에서 자신을 잃고, 그 상실의 틈에서 자아를 재구성한다.

사진은 이 과정에서 하나의 감각적 중계 장치로 작동한다. 이탈리아의 벽, 천, 거리의 흐릿한 표면들은 하만석에게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타자와 맺는 관계의 구체적 장면이자 자아가 일시적으로 떠오르는 틈이다. 작가는 현지인을 해석하거나 유형화하지 않는다. 그는 거리에서 마주한 눈빛, 무심한 표정, 바랜 건물의 질감 등, 그 무엇에도 의미를 부여하 지 않은 채 응시하고, 그 응시의 침북 속에서 자신을 감각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현지인과 방랑자'는 단순한 위치적 구분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방식이다. 현지인이 일상의 중심에 있을 때, 하만석은 그 주변부에서 맴돈다. 그러나 그는 주변 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주변에서만 가능한 정체성의 감각을 끌어올린다. 정체성은 이처럼, 중심에서 밀려났을 때, 관계의 잔류물 속에서 비로소 잠정적으로 형성된다.

이탈리아의 파사드(facade)는 아름답고 안정된 질서를 표상하지만, 하만석은 그 겉면 아래에서 균열을 찾아낸다. 그것은 정체성을 해체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아가 타자 와의 마주침 속에서 일시적으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유동적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의 카메라는 그 틈을 기록하고, 그 침묵의 응답 없는 순간들을 증언한다.

하만석의 사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명시적으로 제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너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그 물음의 방향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감각을 사진 속에 남긴 다. 자아의 해방은 완전한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와 맺는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보여준다.

《beneath the ITALIAN facade》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응시된 타자 속에서 자아가 비로소 '되기(becoming)'를 시작하는 사진적 여정이다. 그것은 해체를 통한 소멸이 아니라, 관 계를 통한 재구성이다. 하만석은 정체성이란 이름 아래 묶이지 않는 존재로서, 카메라와 몸과 시선을 매개로, 그 해방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축적해간다.